분류없음2009/04/07 14:54

우리가 흔히 미다스 혹은 마이더스라 부르는 인물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프리지아 지방의 통치자였다. 음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길러준 실레노스가 여행 중 길을 잃고 프리지아를 방문하자 따뜻하게 환대했는데, 이를 감사히 여긴 디오니소스로부터 손에 닿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미다스의 손'이라는 표현은 관여하는 분야마다 잇달아 큰 성공을 거둔 실력자를 일컫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잉글랜드 강호 첼시의 사령탑으로 활동 중인 거스 히딩크(Guus Hiddink)는 축구계를 대표하는 '미다스의 손'이라 부를 만하다. 부임하는 팀마다 해피엔딩으로, 그리고 영광의 기억으로 환히 물들이고 있는 까닭이다.

 

마법사의 탄생
거스 히딩크 감독 성공시대의 출발점은 자국 명문 아인트호벤 지휘봉을 맡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 4년간 코치로 활동하며 효율적인 선수 지도 방식과 팀 운영 체계 등을 꼼꼼히 익힌 히딩크 감독은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선수단 분위기 장악에 주력하며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로 우승행진의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결과 또한 훌륭했다. 데뷔무대였던 1987-88시즌 자국리그와 FA컵을 석권한 히딩크 감독은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마저 제패하며 아인트호벤을 유럽클럽대항전에 어울리는 팀으로 격상시켰다. 이전까지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되던 우승권 경쟁 구도에 아인트호벤이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 또한 이 무렵부터의 일이다. 1990년까지 3시즌 동안 아인트호벤에서 102경기를 치렀는데, 71승19무13패를 기록해 승률 69.61%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이는 그간의 지도자 이력을 통틀어(첼시와 러시아대표팀 제외) 히딩크 감독이 남긴 발자취 중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참고로 한국대표팀 재임 기간 중 거둔 승률은 58.62%로, 2002월드컵 본선무대를 포함해 총 29경기서 17승6무6패를 기록했다.

아인트호벤에서 거둔 성공은 이후 히딩크가 다양한 이력을 쌓아나가는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터키 명문 페네르바체(1990-91), 라 리가 강호 발렌시아(1991-94) 등을 거쳤고 네덜란드대표팀 감독(1995-98)을 역임했다. 이후엔 레알마드리드(1998-99)와 레알베티스(1999-2000) 등지에도 몸담았다. 하지만 지도자 인생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사건은 역시나 2002월드컵을 앞두고 공동개최국 한국의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무대에 나서고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4무10패) 한국은 히딩크와 손을 잡은 후 체계적인 조련 과정을 거쳐 새로운 팀으로 거듭났고, 이는 '2002월드컵 4강 등정'이라는 기대 이상의 결과로 이어졌다. 2006월드컵과 유로2008을 앞두고 각각 호주대표팀과 러시아대표팀 사령탑으로 낙점 받을 수 있었던 것 또한 2002년의 여운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은 두 대회서도 소속팀을 각각 16강(2006월드컵/호주)과 4강(유로2008/러시아)으로 견인하는 등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남기며 '마법사'의 이미지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

안주함 없는 도전자
2002월드컵 4강 신화 직후 국내에는 한동안 '히딩크 열풍'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거취와 관련한 보도가 줄을 이었고 방송과 지면 광고를 통해 친근한 네덜란드 출신 노(老)지도자의 얼굴이 빈번하게 노출됐다. 자서전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히딩크의 리더십', '히딩크식 경영학' 등이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떠올랐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는 월드컵 직후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히딩크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을 ▲전략과 전술에 대한 전문적 식견 ▲공정한 선수 선발 시스템 ▲원칙과 규율의 강조 ▲올바른 방향과 비전 제시 ▲선수들에 대한 신뢰와 흔들림 없는 소신 등 5가지로 정리해 발표하기도 했다.

더불어 편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히딩크 감독의 특징으로 손꼽힌다. 그간 남다른 지도력에 반한 명문 클럽들과 축구강국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앞 다퉈 러브콜을 보냈지만 히딩크 감독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상대적 약체', '축구 불모지', '변방국' 등으로 표현되는 팀들을 선택하는 '파격'을 보여줬다. 한국과 호주, 러시아 등 세계축구계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나라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것이 좋은 예다.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을 선호하는 여느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행보로, 이는 히딩크 감독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모험을 즐기는 도전자'로 평가받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특유의 선택 기준에 대해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 자신의 입맛에 맞춰 팀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또는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 예상되는 비난의 화살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목도가 낮은 팀을 고르는 것 " 이라며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준수한 성적을 거두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으로,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지도자'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소극적 선택이라는 비판이다. 물론 판단은 자유인만큼 히딩크 감독의 결정과 행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껏 히딩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마다 번번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왔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해결사
유로2008 기간 중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대표팀은 '돌풍의 진원지'로 불리며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으로 대접받았다. 조별리그를 통과하면서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취재 열기는 8강에서 러시아가 강력한 우승후보 네덜란드를 꺾은 이후 절정에 달했다. A.아르샤빈(아스날), R.파블류첸코(토튼햄) 등 주축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기 위해 매일 수백 명의 취재진이 훈련장에 몰려들었고 히딩크 감독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시각각 전파를 탔다. 당시 히딩크의 전사들이 기대 이상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월등한 체력'과 '협력플레이'를 첫 손에 꼽았다. 객관적인 기량 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러시아 선수들이 한발 더 뛰는 부지런함과 효율적인 팀 플레이를 통해 흐름을 유리하게 풀어나갔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렌지군단과 치른 8강전의 경우 후반 중반 이후부터 네덜란드 선수들 중 다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화된 것과 달리 러시아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활기찬 움직임을 유지해 분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현상은 2002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의 경기 양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은 강한 압박을 통해 경기 주도권을 장악한 후 필드플레이어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토털 축구로 상대를 괴롭혔고, 이를 통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2002년의 한국대표팀과 2008년의 러시아대표팀의 성공사례는 소속팀의 특징과 장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한 후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히딩크 감독의 노력이 실효를 거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자료이기도 하다.

마법은 계속되는가
지난 2월 말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첼시의 임시 사령탑으로 부임하자 현지 축구 관계자들은 " 히딩크 리더십의 실체를 확인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 며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기량 면에서 유럽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즐비한 데다 주어진 시간이 3개월에 불과한 만큼 팀을 이끄는 과정에서 전술적인 대처능력과 선수단 장악 능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였다.


당초 긍정과 부정의 전망이 엇갈렸으나 일단 초반에 대한 현지 분위기는 '기대 이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정규리그서 선두 맨체스터Utd.와의 승점 격차가 꾸준히 좁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세리에A 강호 유벤투스를 제압하고 8강 진출에 성공하는 등 긍정적인 뉴스가 줄을 잇는 까닭이다.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빚으며 노골적으로 이적을 요구하던 최전방 공격수 D.드로그바가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순한 양'으로 변모한 것 또한 새 사령탑이 선보일 '마법'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같은 맥락에서 계약 만료 후 지도자와 구단의 입장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의 여부 또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러시아대표팀 감독직을 겸하는 자신의 처지를 들어 " 기간 연장은 없을 것이며 시즌이 종료되면 곧장 러시아로 돌아갈 것 " 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힌 상태다. 하지만 단기간에 팀 분위기를 다잡으며 희미해진 정상 정복의 꿈을 되살린 '검증된 지도자'를 구단 측이 순순히 포기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실제로 영국 언론들은 " R.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히딩크 감독과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대신 D.아드보카트 제니트 감독에게 러시아대표팀 지휘봉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승리와 환호를 선사한바 있는 히딩크 감독의 마법은 종착지를 향해가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될 수 있을까. 첼시의 궁극적 바람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푸른 군단'은 다음 시즌에도 '미다스의 손'과 손을 맞잡고 이상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관심을 갖고 지켜볼만한 포인트가 여럿이다.

text by Ji Hoon Song

[베스트일레븐 - www.bestele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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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란치스코
Soccer2009/03/16 20:06
‘히딩크의 매직’이 퍼거슨을 삼킬까.

 첼시가 2008-2009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4연승을 거두며 선두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바짝 추격했다.

 첼시는 16일 영국 런던 스탬포드브리지에서 끝난 프리미어리그 정규리그 29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 홈 경기에서 전반 18분에 터진 마이클 에시엔의 선제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이겼다. 이로써 18승7무4패(승점 61)가 된 첼시는 하루 전날 리버풀에 덜미를 잡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승5무3패·승점 65)와 격차를 승점 4점 차로 좁히며 선두 탈환에 대한 희망을 살려나갔다. 첼시는 리버풀과 승점이 같지만 골 득실에 앞서 2위로 뛰어올랐다.

히딩크 감독은 첼시 데뷔전을 치른 지난달 21일 애스터 빌라와 원정 경기를 시작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4연승을 질주했다. 2008-200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FA컵을 포함하면 7경기(6승1무) 연속 무패행진. 그야말로 히딩크의 매직이다.

 첼시는 전반 18분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가 맨시티 미드필드 진영 중앙에서 빠르게 올린 크로스를 에시엔이 페널티지역 중앙에서 방향을 바꾸는 발리 슛으로 맨시티의 오른쪽 골망을 출렁였다. 기세가 오른 첼시는 후반에도 맨시티를 강하게 압박하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후반 7분 디디에 드로그바의 강력한 슈팅이 상대 골키퍼에 막힌 첼시는 후반 18분 줄리아노 벨레티의 강력한 중거리슛이 오른쪽 포스트를 맞고 나와 아쉽게 추가 골 기회를 놓쳤다.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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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란치스코
Soccer2009/03/11 09:06

'히딩크 매직'이 첼시를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려놓았다.

첼시는 11일 새벽(한국시간) 토리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08~0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유벤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지난 1차전 홈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첼시는 1승1무(통합 스코어 3-2)를 기록, 8강에 안착했다.

전반 초반엔 유벤투스가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반드시 골이 필요했던 유벤투스는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고, 연이은 슈팅으로 첼시의 골문을 두드렸다.

전반 18분 유벤투스는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트레제게의 킬패스는 첼시의 수비를 한 방에 무너뜨렸고, 패스를 받은 이아퀸타가 오른발로 강한 슈팅을 때려 골망을 흔들었다. 유벤투스는 한 골에 만족하지 않았다. 전반 20분 델 피에로의 강력한 왼발 슈팅, 27분 이아퀸타의 저돌적인 움직임 등으로 연신 첼시를 흔들었다.

반면, 첼시는 특유의 조직력이 살아나지 않아 고전했다. 유벤투스의 수비에 막혀 이렇다 할 기회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전반 종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첼시의 모습이 살아나며 동점골을 노렸다.

전반 44분 드로그바가 찬 프리킥은 골포스트 맞고 부폰의 손으로 들어갔다. 부폰이 공을 잡기 전 이미 골라인을 넘었으나 심판이 노골을 선언해 첼시는 억울함을 호소해야만 했다. 첼시는 이런 억울함을 금방 골로 풀었다. 전반 종료 직전 램파드의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자, 쇄도하던 에시앙이 왼발로 마무리지었다.

후반 초반, 첼시가 분위기를 이어갔다. 첼시는 볼점유율에서 압도하며 추가골을 노렸다. 유벤투스는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후반 15분 이아퀸타를 빼고 '신성' 지오빈코를 투입시켰다.

지오빈코가 들어오자 유벤투스는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전반 19분 델 피에로의 크로스에 이은 트레제게의 헤딩은 체흐 골키퍼가 겨우 막아낼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런 상승 분위기에 위기가 닥쳤다. 후반 24분 드로그바에 고의적인 반칙을 저지른 키엘리니가 퇴장당하면서 유벤투스의 공세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수적 열세에 놓이고도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후반 26분 벨레티의 핸드볼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델 피에로가 차분하게 성공시켜, 유벤투스는 다시 2-1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유벤투스의 분위기로 흘러가 경기가 이대로 끝나는가 하던 무렵, 첼시의 해결사 드로그바가 나섰다. 후반 36분 아크 오른쪽에서 벨레티의 땅볼 크로스를 드로그바가 왼발로 찔러 넣었다. 유벤투스는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첼시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조이뉴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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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란치스코
Soccer2009/02/26 10:25
첼시 수장으로서 가진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거스 히딩크감독은 아직 '배가 고프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첼시는 26일 새벽(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펼쳐진 '2008~0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드로그바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경기 후 히딩크 감독은 유럽프로축구 전문 사이트 '트라이벌 풋볼'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또 내가 갈망하는 것은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유벤투스와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더욱더 매끄러운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히딩크 감독은 "유벤투스와 같은 훌륭한 팀과의 경기는 쉽지 않다. 유벤투스는 매우 잘하는 팀이다.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의 움직임은 최상이다. 그들과 플레이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지배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히딩크 감독은 이날 경기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는 매우 좋은 출발을 보였다. 전반 20분까지는 압박을 매우 잘했고 훌륭한 골을 성공시켰다"며 만족감을 드러내면서도 "우리는 반드시 한 골 이상을 넣었어야만 했다. 약간의 여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기 막바지에 많이 고전했다"며 추가골이 없었던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첼시의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31)는 "유벤투스는 최고의 팀이다. 이런 팀을 상대로 우리는 90분 동안 최상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경기와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90분 풀타임을 소화한 램퍼드는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스카이스포츠'에서 매긴 평점에서 램퍼드는 팀 동료 드로그바와 함께 양 팀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인 8점을 부여받았다.

[조이뉴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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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란치스코
Soccer2009/02/23 13:40


첼시 사령탑 데뷔전 애스턴 빌라 누르고 첫 승

'히딩크 매직'의 위력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거스 히딩크(63) 첼시 감독이 잉글랜드 무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EPL 종반 돌풍을 예고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첼시는 21일 밤(한국시간) 영국 버밍엄 빌라파크에서 열린 애스턴 빌라와의 2008~09 EPL 26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니콜라 아넬카의 선제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 3위(15승7무4패,승점 52)로 도약하며 선두 탈환의 발판을 마련했다.

애스턴 빌라는 가브리엘 아그본라호어, 애슐리 영, 루크 영, 가레스 배리 등 잉글랜드 대표팀의 '영건'들을 앞세워 올 시즌 EPL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크호스'다.

특히 첼시는 99년 이후 빌라 파크 원정에서 9연속 무승(6무3패)을 기록하는 징크스를 지니고 있어 히딩크 감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데뷔전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13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벌이던 애스턴 빌라의 패기도 '히딩크 매직'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공격수 아넬카와 디디에 드로그바, 살로몬 칼루를 나란히 선발 투입하는 적극적인 전술로 '징크스 타파'에 나섰고 전반 19분 프랭크 램퍼드의 절묘한 패스를 아넬카가 마무리하며 얻은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내며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애스턴 빌라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영건'들을 중심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전반 33분 애슐리 영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추고 후반 14분 배리의 결정적인 슈팅이 피터 체흐 골키퍼의 손에 걸리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 후 "만족스러운 출발이다. 경기를 지배하고 공격적인 운영을 펼친 전반전 내용이 마음에 들지만 추가골을 얻지 못한 것은 지적할 부분이다"라고 EPL 첫 승 소감을 밝혔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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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gend2009/02/15 14:14


거스 히딩크(1946년 11월 8일 ~ )는 네덜란드 파르세벌트(Varsseveld) 출신의 축구 감독이다. 2006년에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과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호주 국가 대표팀을 16강까지 올려놓은 바가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위,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위,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16강에 올린 경력이 있다. 2006년 FIFA 월드컵이 끝난 후부터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유로 2008에서 4강에 올랐다.


선수경력



아마추어 클럽 SC 바세펠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며, 네덜란드 클럽 더 흐라프샤프(De Graafschap) 에서 1967년 이래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보낸다. 1970년 PSV 에인트호번에 들어가지만, 주전자리를 얻지 못하고 1년만에 다시 더 흐라프샤프로 돌아가 1976년까지 선수로 활동한다. 이후 잠시 미국에서 북미 축구 리그 워싱턴 디플로매츠, 산호세 어스퀘이크에서 활동한다. 이후 고향에 돌아가 NEC 네이메헌과 계약한다. 1981년 더 흐라프샤프으로 돌아가나 1년 후 은퇴한다. 선수생활 동안 그는 주로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뛰어난 축구기술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지도자 경력

초기 클럽

더 흐라프샤프에서 보조 코치로 지도능력의 가능성을 보인 후 1983년부터 1987년까지 PSV의 보조 코치를 지냈으며, 결국 1987년에는 그곳의 감독이 된다. 1988년 팀 창단이래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안기며 팀을 아약스 암스테르담, 페예노르트 로테르담과 함께 네덜란드 축구 리그의 3강의 위치에 올려 놓는다. 또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팀에 네덜란드 1부 리그 타이틀을 안긴다.

1990년 터키 프로팀 페네르바체의 감독으로 잠시 머무르지만 1년 후 그만두고 스페인의 강호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간다. 히딩크는 여기서 의견을 서슴없이 말하는 성격을 드러낸다. 한 번은 경기 중 발렌시아의 메스탈라 스타디움에 인종차별적 구호가 적혀있자 경기 중에 이를 없애도록 지시하였다. 히딩크가 구사하는 공격 스타일의 축구는 발렌시아 팬들 뿐 아니라 스페인 리그의 다른 팀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및 이후 행적

히딩크가 1995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을 때 가장 큰 도전은 각기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팀 내의 분란이었다. 유로 1996 토너먼트에서 에드하르 다비즈는 그와 말다툼 끝에 고향으로 보내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히딩크는 그런 마찰을 피하고 네덜란드 팀은 가장 멋진 경기들을 선사했다. 미드필더가 받쳐주는 양쪽 윙들의 공격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필립 코퀴나 에드하르 다비즈조차 득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조별리그에서 벨기에와 멕시코와 무승부, 대한민국에 5:0 대승을 거둬 16강에 진출한 뒤 유고슬라비아,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4강까지 진출하였지만, 브라질에 승부차기끝에 패배하고 크로아티아와의 3, 4위전에서도 패해 4위에 머무르게 된다. 이후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바로 뒤이어 스페인 클럽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를 맡았으나 성적 부진으로 인해 사임한 뒤 네덜란드로 돌아갔고 서서히 축구계에서 잊혀져 야인이 되는 듯 했다. 그러다가 2000년 말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심 끝에 승낙하였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2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4회 연속으로 FIFA 월드컵에 진출했었으나 본선에서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고 4무 10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게다가 월드컵을 2년 앞둔 2000년까지도 시드니 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탈락에, 아시안컵 3위를 기록하는 등의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반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시드니 올림픽 축구 8강과 아시안컵 우승을 기록하는 등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우려가 증폭되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허정무 감독을 경질하고 외국인 감독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개최국 프랑스의 감독을 맡았던 에메 자케였으나 본인의 고사로 인해 영입에 실패하였고, 다음 순위는 바로 대한민국에 5:0의 참패를 안겼던 거스 히딩크였다. 마침 히딩크 본인도 1998년 이후 치욕에 가까운 부진한 성적을 안고 있던 터라, 월드컵 개최국인 대한민국의 감독직에 도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마침내 2000년 12월 정식 계약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2001년 히딩크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정식 행보를 시작하였다. 첫 무대는 홍콩 칼스버그컵. 이 대회에서 한국은 노르웨이에 2:3으로 패배하고, 파라과이에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두어 3위를 기록하였다. 비록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지는 못했지만 북유럽의 강호 노르웨이에 2골을 넣는 저력을 발휘하며 큰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리보는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대륙간 축구대회가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개최되었는데, 대구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한국은 프랑스에 5:0으로 대패하고 말았다.[3] 체력과 몸싸움, 스피드에서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상대였던 것이다. 특히, 히딩크 입장에서는 3년 전 프랑스에서 한국에 안겼던 그 수모를 이번에는 자신이 경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지단 등의 전력 멤버가 출동하지도 않았고 전날 입국한 탓에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은 2군격이었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이후 멕시코에 2:1, 호주에 1:0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결국 골득실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공교롭게도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도 스페인에 큰 점수차로 패한 뒤 2경기를 연속으로 이겼지만 골득실차로 탈락했었다.) 반면 트루시에가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조별리그를 통과한 뒤 호주를 꺾고 프랑스와 결승에서 만났다. 1:0으로 지면서 준우승에 머물게 되지만, 한국이 5:0으로 대패한 프랑스팀에 불과 1골만 허용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것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강팀과의 경기를 함으로서 객관적인 실력차를 확인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 일부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서 서서히 히딩크 경질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8월 체코 원정 평가전에서 또 5:0으로 대패[4]하면서 히딩크 경질론이 급부상하게 되었다.[5] 그렇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정몽준 회장은 히딩크 감독을 적극적으로 옹호[6][7]하면서 경질론을 일축하였다. 이후 2002 월드컵이 불과 반년밖에 남지 않은 2001년 11월, 마침내 주경기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개장되었고, 이 날 한국팀은 1998년 월드컵 3위팀인 크로아티아와 친선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의 패배를 점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2:0으로 승리하고 2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아직 문제점이 많았지만 유럽팀을 상대로 선전했다는 점에서 2002 월드컵에 대한 희망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01년 12월에 있었던 월드컵 조추첨 결과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당혹 그 자체였다. 험난 그 자체인 유럽 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 FIFA 랭킹 5위의 강호 포르투갈, 그리고 북중미의 신흥 강호 미국과 D조에 편성된 것이었다. 미국은 어느 정도 해볼만하다고 치더라도 폴란드와 포르투갈은 객관적인 전력상 도저히 이기기가 힘든 상대였다. 그러나 조추첨을 지켜본 히딩크 감독은 포르투갈과 폴란드가 D조로 오는 순간 알 수 없는 의미의 미소를 띠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내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한국은 우루과이와의 원정 평가전과 북중미 골드컵에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루과이전에서는 2:1 패배, 그리고 북중미 골드컵에서는 미국과 캐나다에 1:2로 패하고 최약체 쿠바와 득점없는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의 부진한 모습을 보여 또 다시 불안감을 갖게 했다. 이제 불과 월드컵 첫 경기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인들로서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여전히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 여유있는 표정의 의미를 한국인들이 알게 된 것은 2002년 3월부터였다. 유럽의 강호 터키와 0:0 무승부, 핀란드에 2:0으로 승리한 이래로, 4월 코스타리카 2:0 승리, 중국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계속해서 무패 행진을 기록한 것이었다. 게다가 5월 16일에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무려 4:1의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16강에 대한 기대가 확신으로 바뀐 것은 5월 21일, 우승후보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이었다. 서귀포에서 벌어진 이 경기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잉글랜드의 승리를 확신했고 전반에 잉글랜드가 1: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졌고 경기는 결국 1:1 무승부로 끝났다. 잉글랜드 감독과 선수들은 물론이고, 기자들조차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의외의 경기 결과였다.

그리고 5월 26일 최종 평가전 상대는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1년 전 5:0의 치욕을 안겼던 프랑스였다. 객관적 전력상 프랑스가 당연히 우세하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불과 5일 전 잉글랜드가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기 결과는 안개속이었다. 전반 15분 프랑스가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한국이 2골을 넣으며 전반을 2:1 역전한채로 끝냈고, 후반에는 프랑스가 다시 2골을 기록하여 2:3으로 패배했다. 한국은 7경기 무패행진 이후 처음 패배를 당한 경기였지만, 프랑스 선수들과 감독, 기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정도로 한국이 사실상 이긴 경기였다. 이 경기를 통해 히딩크는 한국팀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랐음을 당당하게 밝혔다.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막한 이후, 6월 4일 폴란드전에서는 여유있게 2:0으로 승리했고, 6월 10일 미국전 무승부, 그리고 6월 14일 포르투갈 경기에서는 1:0으로 승리하여 2승 1무로 D조 1위를 기록해 16강에 진출하였다. 국민들의 열광이 대단했다. 그러나 히딩크 본인은 아직 배가 고프다는 말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였고, 일본의 탈락에 이어 치러진 6월 18일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허용한 뒤 이탈리아의 수비벽에 막혀 고전하자 히딩크는 후반 중반 이후 수비수 전원을 벤치로 불러들이고 공격수들만 투입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결국 이 작전이 성공하여 후반 종료 직전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었고, 연장 후반 12분에는 안정환이 역전 골든골을 넣어 이 대회에서 아시아 팀으로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이겨 월드컵 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이 4강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기록하였다. 아쉽게도 독일과의 4강전과 터키와의 3, 4위전에서 패배해 4위에 머물렀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16강 진출조차 어려워보였던 한국팀을 4위에 올린 것은 히딩크 자신도 놀란 대단한 성과였다. 이런 공로로 히딩크는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 국민이 되었고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다음 월드컵까지 그를 감독으로 앉히자는 말이 있었고, 히딩크 본인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잔류를 희망한다는 의중에 무게를 싣는 듯한 발언을 했었지만, 결국 재계약을 하지 않고 네덜란드의 프로팀 PSV 에인트호번을 맡게 되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히딩크는 유독 대한민국을 자주 방문하고, 대한민국 기업의 CF 제의를 수락하는 등, 대한민국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1998년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채 야인으로 전락해가던 자신의 위상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높아졌기 때문이다.

PSV 에인트호번

유로 2008에서의 히딩크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고향으로 돌아가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을 맡는다. 그리고 그는 PSV 에인트호번에 박지성과 이영표를 영입한다. 에레디비시에서 2002-03, 2004-05, 2005-06시즌에서 우승하였다. 또한, 2004년/2005년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에인트호번은 챔피언스 리그가 지금의 형태로 바뀐 1992년/1993년 시즌 이래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PSV는 1988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안컵을 차지했다.) PSV는 준결승에서 AC 밀란에 아깝게 패배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5년 7월 22일 히딩크는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수락하고, PSV와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감독할 거라고 발표한다.
이후 남미 5위 우루과이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원정경기 0:1 패배, 홈경기 1:0 승리를 거뒀고, 홈에서 연장전을 무승부로 마친 뒤 가진 승부차기에서 3:2로 이기며 1974년 서독 월드컵 이후 32년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따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호주는 브라질, 크로아티아, 일본과 함께 F조에 속했다.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인해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40분 이후 3골을 몰아넣으며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선전했지만 0:2로 패배했고, 마지막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는 2:2 무승부를 거둬 브라질에 이어 1승 1무 1패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6강에서 맞붙은 팀은 지난 대회에서도 히딩크가 맞붙었던 이탈리아였다. 호주는 이탈리아를 맞아 대등하게 선전하며 후반까지 0:0을 기록하여 연장전으로 가는 듯 했지만, 후반 추가시간 종료 직전 이탈리아의 그로소가 먼저 넘어진 호주 선수의 발에 걸린 것을 심판이 페널티킥을 선언하였다. 결국 토티의 페널티킥 성공으로 호주는 0:1로 패배하여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6년 4월 14일, 히딩크는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수락하였다. 계약의 상세 내용은 2년 6개월의 계약기간과 24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성과에 따라 계약 기간을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 FIFA 월드컵이 끝난 이후, 히딩크는 러시아의 감독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8월 16일, 히딩크는 라트비아와의 친선전을 통해 러시아 국가대표팀에서의 공식 첫 경기를 치뤘다.

유로 2008 예선에서 E조에 편성된 러시아는 잉글랜드를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조 2위를 차지하여 본선에 진출한다. 히딩크는 최근 러시아와의 계약기간을 2010년까지 연장하였다.

히딩크가 이끈 러시아는 본선 조별리그에서 D조 2위를 차지하여 8강에 올랐다. 2008년 6월 21일에 펼쳐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4강에 진출하였으나, 그 이후 4강전에서 우승국이기도 한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하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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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란치스코
The Legend2009/02/12 16:26

거스 히딩크 (Guus Hiddink)

 
- 출생일 : 1946년 11월 8일(1946-11-8) (62세)

- 출생지 : 네덜란드, 파르세벌트
 
- 신  장 : 182cm

- 가족사항 : 3남 중 차남, 아들 2

- 현역시적 포지션 : 미드필더 (은퇴)

- 현 소속팀 : 러시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프리미어리그 챌시FC (감독)


- 선수 경력

 연  도  클  럽  출장수 (골)
 1967-1970  더 흐라프샤프  102 (47)
 1970-1972  PSV 에인트호번  030 (1)
 1972-1976  더 흐라프샤프  181 (20)
 1976  워싱턴 디플로매츠  013 (0)
 1977  산호세 어스퀘이크  015 (0)
 1978-1981  NEC 네이메헌  104 (2)
 1981-1982  더 흐라프샤프  025 (0)
 합  계    470 (70)

- 지도자 경력

 연  도  팀
 1982-1984  더 흐라프샤프 (코치)
 1984-1987  PSV 에인트호번 (수석코치)
 1987-1990  PSV 에인트호번 (감독)
 1990-1991 터키 페네르바체 SK (감독)
 1991-1994 스페인 발렌시아 CF (감독)
 1995-1998  네덜란드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1998-1999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1999-2000  레알 베티스 (감독)
 2000-2002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2002-2006  PSV 에인트호번 (감독)
 2005-2006  오스트레일리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2006-  러시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2009-  챌시FC (감독)

- 상훈

 연  도  상훈 사항
 2002.07  대한민국 명예국민증(1호), 명예시민증(서울시)
 2002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2002.07  2002한일월드컵 최고의 감독(미 타임지 )
 2002.11  에르네스트 유치상(Ernest Lluch Award)
 2002.12  프로축구 월드컵특별상
 2003.01  2002년 올해의 국가대표 감독 2위 선정 (IFFHS)
 2003.01  제8회 스포츠조선 선정 코카콜라 체육대상
 2003.02  2002년 올해의감독상 (네덜란드올림픽위원회)
 2003.05  2002 올해의 감독 (아시아축구연맹)
 2005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 1호 헌액자 선정
 2005.05  네덜란드 축구 올해의 감독상
 2008  러시아축구협회 올해의 감독상


- 기록 사항

[대표팀 경력]

 연  도  기  록
 1996  유럽선수권대회 8강 (네덜란드 대표팀)
 1998  프랑스월드컵 4위 (네덜란드)
 2002  한일월드컵 4위 (대한민국)
 2006  독일월드컵 16강 (오스트레일리아)
 2008  유럽선수권대회 4강 (러시아 대표팀)

[프로팀 경력]

 시  즌  기  록
 85-86, 86-87, 87-88시즌  네덜란드리그 3회 우승 (PSV 아인트호번)
 1988  정규리그-FA컵-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번)
 1998  도요타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
 1998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레알 마드리드)
 2002  네덜란드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번)
 2004  네덜란드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번)
 2004  네덜란드 KNVB Cup 우승 (PSV 아인트호번)
 2005  네덜란드리그 우승 (PSV 아인트호번)
 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PSV 아인트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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